리얼리즘이란...
리얼리즘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언제나 지루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왜 예술은 현실을 모방한다고 할까. 그 때의 현실, 세계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난 리얼리즘 "효과"를 역설한 롤랑 바르트의 말에 온전히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 이론을 확장하면 인공지능 로봇이나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림이나 음악에서의 표현주의, 심지어 꿈마저 리얼리즘의 범주에 귀속되기도 한다.
아도르노가 말한 비판적 리얼리즘도 결국은 재현, 반영론이다.
하나의 언어가 내용을 구조화된 인식으로 이끄는 이상, 객관적 현실과 상호주관적 이해의 현실의 차이는 리얼리즘에 여백이 있음을 말한다. 인식의 대전환을 이끄는 형식의 변화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관습이 되버린다는 오든Auden의 시가 있다.
미국에 있었을 때 관련 논문과 저서를 읽는데 꽤나 시간을 바쳤건만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한 건 아니고, 나 또한 나 자신만의 명확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19세기 서유럽 예술 사조 중 하나, 컨벤션, 효과, 철학에서의 실재론, 기타등등...
여기에 내 논문 작품에 나타난 두개의 질문을 나란히 놓아본다.
1)why always Dorothea? 왜 항상 도로시아만?--즉, 왜 항상 도로시아라는 여주인공의 편에 서서 캐서본Casaubon을 나쁜 놈으로 봐야하는겨?라는 화자의 물음으로 <<미들마치>>의 유명한 문구다. 홍상수가 생각나는데, 아무튼 조지 레빈의 주에 따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한 존중으로, 일종의 리얼리즘의 윤리라는 논지. 절대적 타자성.
2)what is it like to be a bat? 박쥐와 같은 게 어떤 걸까? 토머스 네이글의 유명한 명제로 쿳시가 인용한다. 공감적 상상력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한가라는 물음. 네이글은 불가능, 쿳시는 가능. 뭐,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하니, 여기엔 찬반이 나뉜다. 공감은 의무인가라는 필연적 물음을 던진다.
레비나스의 생각은 1)번에 가깝다. 그리고 엘리엇의 견해대로 일상의 에고이즘에서 나 밖의 세계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반면 문학의 리얼리즘을 다시 묻는 쿳시 그리고 너스봄에게 그게 왜 불가능한 것인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원래 그게 소설의 미학이 아니었는가라는. 여기에 지각의 문제가 개입된다. 맹자의 양혜왕 편 한 일화.
리얼리즘의 문제는 내가 사는 현실 세계의 한계를 어디까지 두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본다.
내가 상상력을 통해 가닿을 수 있는 인식 능력의 최대치.
강호 제현들의 조언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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