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이 만드는 영문과 소식지에 조규형 선생님의 글이 실렸다. 단락 구분은 옮겨오는 과정에서 임의로 내가 한 것이다-------------------------------------------------
산비둘기 A와 B
문과대와 국제관 사이에 나무가 베어져 있었다. 해가 질 무렵, 퇴근길이었다. 인부들은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녹음 짙은 여름이었는데 베어진 나무 사이에 잎과 가지들이 미동하고 있었다. 들춰보니 새 두 마리였다. 몸집은 이미 상당했지만 어린 것들인지 날지 못하고 몸을 뒤뚱거리기만 했다. 어미는 보이지 않고. 두 마리를 손에 들고 발길을 돌렸다. 내 연구실이 있던 대학원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 여학생 회관 앞에 마침 누군가가 넉넉한 컴퓨터 포장박스를 내놔서 그 속에 둘을 넣어 연구실 한쪽에 놓았다. 새들이 발버둥거리며 자꾸 튀어나오려 해, 할 수없이 박스를 닫고 퇴근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괜한 생각에 동물구조본부인가 뭔가에 전화를 했다. 이런 경우 이곳에 연락을 하면 가져다 키운다는 것을 아마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나서였을 것이다. 내 얘기를 듣더니, 필시 산비둘기이며, 한마디로 위기에 처한 종(endangered species)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일로 인해 들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며칠만 더 키우면 날려 보낼 수 있다기에, 그 며칠을 무얼 먹여서 어떻게 키우느냐고 했더니, 돼지고기를 다져 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며칠을 돼지고기를 날랐다. 동막골 촌장 말씀대로 “그저, 마이 멕이면 되지”였는데, 박스 안이 점차 난리가 아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 친구 가운데 특히 A가 그랬다. 모든 소란은 항상 A가 피우고 있었다. 어떤 땐 살짝 들여다보는 틈으로 비집고 날아올라 연구실을 휘젓고 다녀 다시 잡아넣느라 북새통을 떨며 혼자 이게 뭔 짓인가 했다. 분명 바깥 세계로 날려 보낼 때가 된 것이다. 문제는 B였다. 이 친구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박스 안 바닥만 훑고 있었다. 아니 조용히 한 쪽 구석을 차지하고만 있었다.
이산가족이 되는 것보다 그래도 개운산에서 함께 살게 해야 할 것 같아, B가 A만큼 설쳐대면 함께 놓아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며칠을 더 기다려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드디어는 솜털이 날리고, 특히 생리 현상에 의한 냄새도 문제였다. 이렇게 날이 가자 혹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께 폐가 가지 않을까 못내 우려하게 되었다. 열흘이 가까워 올 무렵, 할 수없이 박스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 친구들을 발견한 시각과 비슷한 어스름 무렵, 지금은 없어진 옛 박물관 뒤편 개운산 밑으로 커다란 박스를 들고 나가면서 이번엔 내가 뒤뚱거렸다. 박스 안에서 A가 또 난리가 아니어서 더 뒤뚱거리게 했다.
박스를 열었다. 박스 안의 냄새보다 더 먼저 A가 날았다. 그런데 한 몇 걸음 정도랄까 날다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리곤 부석거리며 분명 엉금엉금 기어서 산 속으로 사라졌다. A의 뒤를 이어 드디어 B가 날았다. 단 한 번에, 몇 걸음이 아니라, 똑바로, 날개 짓도 거의 없이, 정말로 총알과도 같이, 개운산을 거슬러 올라 순식간에 내 눈에서 사라졌다. B는 나를 놀라게 했고, 난 A가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