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이

비평학회를 다녀온 후

voodoo chile 2006. 2. 11. 00:09

아마도 당분간은 비평이론학회에서 주최하는 비평학교를 듣고 싶은 맘이나 들을 기회는 없을 듯 싶다.무언가 결정되는 대로 잠시여기에서 떠나가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약간은 애틋한 마음이 들더라. 어제와 오늘은 그런 맘으로 마지막 비평강의를 들으러 갔다.

대학원에들어가 내가맨 처음 한 것은 겨울 비평학교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그때가 1월인지라 난아직 학부 졸업식도 치루기 전의어중간한 상태에 있었는데, 총무를 맡으신 지도 샘이 실무를 담당하였고 난지도학생이란 이유로 그 일에 동원된 것이었다. 그 때 샘은 동성 형과 나를 불러 이러저러한 지시 사항을말씀 하신 후 우리를 '늘봄'이라는근처의 칼국수 집에 데려 가셨다.왜 남의 파트에 있는 동성형이 나오냐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는데,형의 지도 교수인 김우창 샘이 학회 회장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일을 함께 하는 것이 제자된 도리가 아닌가 하고 샘은 생각하였던 게다.우쨌든내가 지도 샘에게밥을 얻어 먹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수고 좀 해야겠다는 말씀에 근사한 대접을 해주시나 하는 내심의 짐작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뭐실망하지도 않았다.하여튼 그 때의칼국수 접대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 샘의약간 보기드문 행동 때문이었다.남은 국물에밥을 말아 쑤어놓은 죽의 밑바닥이 서서히 보이게 되자동성형과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고, 그러자 샘은열기 땜에솥바닥에 눌러 붙어 있는 죽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 잡수시는 것이었고,그러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와 동성형은 다시 수저를 들어함께 솥바닥 긁는 일에 동참하였다. 나는 이거 조금 웃긴다는 심정과 더불어 내가 벌써 지도교수 눈치보는 일을하는가라는약간의 아니꼬운 맘이발동하였는데, 생각이 깊은 동성형은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면 선생님이 얼마나 무안해 하셨겠는가라는 말을뒷날 내게 얘기해줬다. 역시 대가를 옆에서 지켜보다보니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 난2년 동안 여름과 겨울에 고대에서 열리는 비평이론 학교일에 불려다니게 되었다. 보온 물통을 빌리러 본관 수위실에 자주 들렀던 것이나전국에 산재한 학회 회원들에게 학회지를 발송하기 위해밤늦게 까지 풀붙이기 하였던 일까지, 바쁘신 선생님을 둔탓에 우리 파트의 몇몇은 대학원 와서 남들 안하는 작업을밥사준다는 이유로 연구조교에 이끌려 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나

힘을 쓰는 일은 여자가 많은 학과 특성탓에 우리 남자들 몫이었단다.싸가지 없는 후배들을 연구조교 일하는 누님도부르기가 싫었던모양인지 매번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 때문인지난 지금도 걔네들을 보면 싸가지 없는 뇬넘들이라는 맘이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제그 일은 더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겨울 비평이론 강좌가 숙대에서 열렸다.강사 샘들의 구성은 매번 바뀌지만 다루는 쟁점은내가 전에 몇 번 들었던 것들을반복하는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매 하루 두 분의 샘이 각 주제별 강좌를 맡아 강의하는 것이나 얼굴만 바뀔뿐이런 일에 동원되는 대학원 조교들의 수고는여전한 것이었다. 전에 있던 조교들은 다 졸업하고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접수하는 순간에 떠올랐다.

고대에서 숙대로 장소가 옮긴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서울의 중앙에 위치한 숙대가 꽤 괜찮은지리 조건을 갖춘 것이겠지만,그동안 고대에서 개최하였던 비평학교가 그리로 넘어간 것은 다른 사정도 있었으리라는 짐작을 해본다.무엇보다 울 샘 외에 고려대 영문과에 계신 그 어느 샘이 이 학회에관심을 보이고 함께 일을 도우려 하셨는지지 궁금하다. 선생님도 외로우셨겠지만 일하는 우리도 다른 파트얘들의 무관심에 조금은 서운했다. 그러나잠깐 지나쳐가며 본 것에 불과한 것이겠지만,숙대에 계신 몇분의 남자 샘들의 단합은보기에 부러운 것이었다.

내가 박사를 마치면 저 강단에 서 있을 수 있을까? 내가 뭘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흘러갈 시간과 해야 할 공부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잠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백진 누나가 어제와 오늘 근사한 저녁을 쐈다. 발렌타인 데이에 못볼것이라면서 미리 나랑 근성이에게 전해준 초콜렛까지.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은 나름대로기분 좋은 하루였어.

Bonne nu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