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ic writing

장자나 니체나

voodoo chile 2006. 1. 28. 02:03

칸트에 대한 멋진 야유. 니체, 그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어떤 사람이 물건 하나를 덤불 뒤에 숨겨 놓은 다음에 그것을 바로 그 자리에 찾고 또 발견한 다면, 이 찾고 발견하는 일에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이성-영역 안에서 “진리”를 찾고 발견하는 일도 마찬가지 사태이다. 만약 내가 포유동물의 정의를 하고, 낙타 한 마리를 보고 난 다음, “봐라, 포유동물이다”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으로써 진리가 해명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매우 제한된 가치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내 생각에, 이 진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본 진리이며, “진리 자체‘로서 인간과는 상관없이 현실적이고 일반적으로 타당한 어떤 관점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진리들을 찾는 탐구자는 근본적으로 인간 내에서 세계의 변형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는 세계를 인간과 같은 종류의 사물로 이해하려고 애를 쓰며, 기껏해야 동화(同化)의 감정을 취할 뿐이다....... 이 탐구자의 방법은, 인간을 척도로서 모든 사물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이 사물들을 순수 대상으로서 자신 앞에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믿는 오류로부터 출발한다

Nietzsche, 이진우 譯, 『비극적 사유의 탄생』,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위 글을 읽었다면 다음 장자 중 「齊物論」의 글을 읽어 볼 것을 권함. 둘이 참 닮았소.

사람은 습(濕)한 데서 자면 허리병이 생겨 반인 불수로 죽지만 미꾸라지도 그렇던가? 나무 위에 있으면 [사람은]떨고 무서워 하지만 원숭이도 그렇던가? 이 셋 중 어느 쪽이 올바를 거처를 알고 있는 걸까? 또 사람은 소, 돼지 따위의 가축[고기]을 먹고, 순록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먹기 좋아하고, 올빼미는 쥐를 먹기 좋아한다. 이 넷 중 어느 쪽이 올바른 맛을 알고 있다고 하겠는가? 암 원숭이는 긴 팔 원숭이가 짝으로 삼고, 순록은 사슴과 교배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논다. 모장(毛?)이나 여희(麗姬)는 사람마다 미인이라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를 보면 물 속 깊이 숨고, 새는 그를 보면 하늘 높이 날아 오르며, 순록은 그를 보면 기운껏 달아난다. 이 넷 중 어느 쪽이 이 세상의 올바른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천하의] 인의(仁義)의 발단(發端)이나 시비의 길은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안동림 선생이 번역했고 현암사에서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