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가 생각한 혹은 꿈꿔왔던 자신의 귀향은 이런 모습이었다고.
"그가 그에게 맞는 귀향을 한 것처럼 나는 나에게 맞는 귀향을 하고 싶다. 나는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내 발로 걸어서 농바위고개와 긴등고개와 솔개고개를 넘고 싶다. 그 고개를 내 발로 쉬엄쉬엄 넘다가 운수 좋으면 천천히 지나가는 달구지라고 얻어타고 싶다.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때는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 내 나이테의 깊은 골짜기로 신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내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해도 어느 조촐한 툇마루, 깨끗하게 늙은 노인의 얼굴에서 잊어버린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산문집 <<두부>>에서, 창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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