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이 맥북을 샀다. 전에 쓰던 레노보 컴퓨터가 고장이 났는데 c 드라이브에 있던 자료가 몽땅 날라갔다. 다신 그 제품을 쓰나 봐라. 금전적으로 좀 무리가 가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 보기로 한다.
한강의 작품이 화제가 되어 두 편을 골라 읽었다. <<채식주의자>>는 그렇게 잘 쓴 소설이란 생각이 안든다. 정확한 동기를 모르겠다. 오토바이에 매달린 개를 본 것이 근원적인 체험일까. 월남전에 참전했다던 그 아버지란 인물이 딸에게 고기를 먹이려 폭력을 쓰는 모습의 묘사가 좀 어설프다. 두번째 장은 에로틱한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이 나중에 정신병원에 간다는 게 어째 설득이 안간다. 육식과 그 너머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알겠는데, 조금 두루뭉실하다. <<소년이 온다>>가 훨씬 아릿하고 바흐친의 용어를 빌려 다성적인 소설의 면모를 보여 준다. 내가 그 곳에 없었고 그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져야 하나.당신이 장례식을 치루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렸다는 소설 속 인용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양심"이라는 말도 울림을 준다. 좀 더 치밀하게 짜여진 느낌.
또 <<곡성>>과 <<아가씨>>를 봤다. 둘 다 재밌었다. <<곡성>>은 믿음과 의심, 선과 악의 대립 사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별 것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누구라도 그런 딸을 둔 아비라면 그러지 않을까. 세상은 의심하면 의심하는 대로, 믿으면 믿는 대로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겠지만, 그래서 뿔달리고 눈이 빨갠 악마가 등장 하겠지만, 막상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가 삶에 직접 개입해 버리면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어쩌라고...알레고리도 아니고 리얼리즘도 아니고 그 중간에 줄타기를 한다는 생각. 아, 자연 풍광은 참 아름답게 찍었다. <<아가씨>>의 경우엔 감독의 페미니즘을 구현하는 영화인 듯. 김민희, 김태리 둘 다 연기를 잘한다. 변태 그림 소설집을 몽땅 수장시켜 물감을 뿌려대는 장면이 통쾌했다. 사람은 마음 깊은 연민에 움직이는 존재다. 동성애의 모습도 그런 면에서 이해한다.
더운 날에 어디 안가고 어디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뭘 들여다보거나 쓰는 것이 최선의 피서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