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나같은 촌놈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나보다. 한달도 못되어 향수병이 도지기 시작했고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 얼굴이 연달아 내 몽상과 꿈에 나타났다. 부모 형제들은물론이고 다른 인연이 있었던 그 모든 사람들을 하나 둘 떠올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좋아했던 여인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제 아이엄마가 되어 있을수도 있고, 한국이 아닌 곳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부질없는 짓임을 알지만, 나의 이런 몽상은뭉게구름처럼 종종 왔다가 사라져간다.시간이 지난지 오래인데 왜 아직도 이 모양인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몇년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셈하여본 그 세월의 흐름에 벌써 내가 원통하게 생각하는 것은내 부모님의 늙음이다.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뭘하나 하는 회의도 가끔 든다.지식의 욕구를 채우는 것은 한이 없는 일일 것이다.무한한형벌이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의 삶이 떠올라진다. 소박하게 사는 삶의 기쁨을 상상하며... 생존하기 위해 공부하는 건 괴롭다.여기서 공부량이 많아진 건 사실이고 몸은 힘들어졌다. 그러나 정신적인 긴장감, 혹은 절박감을 주지는 않는다. 난 아직도 느긋하다. 왜 그럴까? 내가 네오처럼 아카데미라는 체계의 매트릭스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가.프로그램에 어떤 강제성이 느껴진다.

선생님의 권유로 읽게 된Hillis Miller의 [On Literature]를 봐도, 아카데미는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 체계의 마스터가 되지도 않고 이런 소릴 한다고 나무랄지 모르겠으나(난 마스터는 땄다), 인생과 학문은 결단코 다른 것이다.끌려가는 공부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나를 위한 공부, 말 그대로 위기지학을 위하여.

가상의 공간....조지 엘리엇을 읽노라니 그녀가램프를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아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서 빨리 논문써서 졸업하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초탈할 필요가 있다. 관조할 필요가 있다.

새학기가 시작하였으므로 교수와 동료들 앞에서, 강의실과 만찬자리에서, 나의 관심사항과 앞으로 공부할주제를 말할 기회가 몇번 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입학지원서에 낸 학업계획서를 떠올리며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조금씩 다른 것을 말하였지만, 그 조금씩의 다름에 약간 혼란스런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정말 내가 공부하려는 것이 무엇이 될까.

오늘도 교회에 갔다. 이경호, 김지연 부부였나, 여기 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신학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3년 세월이 30년처럼 느껴졌다고.헌금송을 부르면서 둘 다 눈물을흘렸다. 남편은 목이 메어 목소리가 모기만해졌고, 부인은 찬송가로 얼굴을 가렸다.끝난 후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따뜻하게 들렸다.교회에서 부인과 함께 반주를 나눠 맡았던 지휘자 아줌마가 그들의 노래에 반주를 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니 나도 역시 숙연해지고 눈가가 젖어왔다. 떠나는 이웃이자 동료 반주자에 대한 작별의 아쉬움이 내게도 전해져왔다. 진정으로 이곳에서 내가인간 관계의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학교 사람들보다 교회사람들에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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