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Possible
어제로 여기온지 정확히 한달이 지났다.7월 말에 와서 한여름을 버텼으면더위는 좀 꺽여주는게 예의 아니겠냐만어림반분어치도안되는 기대임을 알았다.10월 중순까지 기다리라니, 좀 너무한다. 미네소타 대학 영문과 FAQ란에 "거기 정말로 춥습니껴?"라는 질문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만(답변이 "예, 그치만 겨울에만요"다) 이 대학에는 "거긴 정말 덥나여?"라는 질문이 나올만 하다.
한달동안 뭐했나..책은 별로 보질 못했고, 대신 놀긴 좀 놀아서 하얀 내 피부는 검게 그을렸다. 머리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데 길러볼까 생각중이다. 낮잠이 밀려들면 어김없이 자버리고 얼렁뚱땅 이래저래 보낸 한달, 살림은 그래도 조금 늘었지. 필요한 집안 물건은 웬만큼은 다 장만하여 큰 불편없이 잠자고, 씻고, 공부하고 , 요리하고, 가끔 TV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텍사스 주 정부에서 지원이 나오기 전까지의무적으로 가입해야하는건강보험을 들었다. 그리고 곧내이름으로 나올 수표다발과SSN카드(사회보장번호, 우리로 따지면 주민등록증 비슷)를 기다리고 있다.학교 통학을 위해 월마트에서 자전거도 구입하여 안장을 교체했다.
앞으로 더 바라는 것은 가장 먼저 자동차 구입과 운전면허취득이나 겨울방학이후로 미루어 두고 있다.
너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산과 물이 다른 이곳에서 이만큼 준비하고 놀았으면 선방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참, 하나 힘든게 있다면 아무래도 먹는 것이다.마늘의 귀중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그럼 이제 공부하자.
이번 학기에는 필수로 듣는 세미나 수업 외에 조지엘리엇을 읽는 수업, 발터 벤야민을 중심으로 인접한 이론가들을 공부하는 수업을 택했다. 특정 작가와 이론가만을 다루는 수업을 듣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지만, 조지 엘리엇은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작가다. 선생의 수업 취지는 작가의 "word"에 관한 것이라는데, 말의 용법을 포착하는 섬세한 읽기를 요할 거 같아 더 끌리는 것도 있었다.그런데 오늘 학교 구내서점에 가보니조지 엘리엇의 작품이 그렇게 두껍고 권수도 더 많은줄 미처 몰랐다.제대로 걸렸다.벤야민은 석사 논문을 쓰면서 좋아하게 된 문예이론가였고 하바드에서 나온 선집과 Arcade Project를 비싼돈 들여서 한국에서 미리 구입한 터였다. 벤야민을 읽으면 아도르노도 읽게 되겠지.
한편으론 미국에 왔으니 미국문학을 제대로 배워봐야지 않겠나라는 생각도 있으나 학기는 많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두고 생각할 일이다. 관심의 방향이 어떻게 달라질지, 어떤 뜻하지 않은 계기들이 여러 번 찾아 오는 게 아닌가한다. 경험상으로, 그리고 예견상으로 봤을 때.
정감이 가는 동기들 중엔 아미샬이라는 인도 아이가 있다. 구자라트 출신으로 (살만 루시디의 고향인 뭄바이보다 약간 북쪽에 있다) 힌두교도이며 그래서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빅토리아조 소설에 관심이 있다고 하여 나랑 엘리엇 수업을 같이 듣게 되면서 두과목이나 같이 듣게 되었다. 빅토리아조면 인도 식민지 통치의 절정기 아닌가 하여 어떤 뜻으로 그 시대 문학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런데 큰 이유는 없이 그냥 좋아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그래, 내가 맥이 빠졌지만 내 질문에 조금 억지가 있다.
내일이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날이다. 이제 더 놀고 싶어도 맘대로 못 놀거 같다.
어제 오늘 느낀 거지만 한 6시간 동안 집중해서 영어를 들으면잠이 오려고 한다.
사고와 표현의 괴리를 극복하기,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 할 첫 과제인 거 같다. 그리고 이건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시간 밤 11:00, 한국 시간 낮 1시
어머니, 가족 모두 다 보고 싶소, 먼저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