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금 욕심을 부리나 보다. 진도에 맞춰 읽는다고 해도 제대로 따라오는지 조금 염려된다. 몇 학생들이 __Elizabeth Costello__를 읽는데 버거워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내가 조금 수준을 높게 잡았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생각할 거리가 많고 그에 맞춰 나도 수업자료들을 준비해오고 토론거리를 궁리한다. 참조할 텍스트가 조금 많다. 어떤 맥락에서 쿳시가 그런 자료들을 인용하는지 설명은 해야 하겠는데 이게 또 다른 독해를 요구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 속으로는 '조금만 참아 다오, 다음에 읽을 소설_The Sense of an Ending__은 더 쉽고 재밌고 절대 이런 철학적인 내용은 아니란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한편으론 대학에서 3, 4학년을 상대로 이 정도 담론들에 대한 접근은 필요하고 그만큼 학생들의 이해도와 독서경험도 충분히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있다. 다만 학생들 숫자가 많다. 57명 등록에 간혹 몇몇 빠지는 학생이 있긴 하지만 그 전체를 상대로 원활한 토론을 한다는 게 마냥 수월하지만은 않다.
caritas.. 영어로는 charity... 기독교에서 바울이 말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킹 제임스버전에 charity로 나온다. 부처님의 대자대비, 김환이 강쇠에게 했던 말...깊은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연민.. 필립스에게 했던 중년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의 행위를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공감에 앞서, 죽어가는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동물들을 위한 그녀의 마음도 근본적으로는 그 "멍청한 희생"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먼저 아닌가.. 뭐 남성 작가의 판타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까지...
전공 교양 수업은 35명이 등록해 있다. <영미문학 입문>이란 수업인데 난 사실 이런 기본 입문 수업이 더 어렵다고 느껴진다. 중간고사까지는 주제별로 단편소설 위주로 읽는데 그 다음엔 시를 다룰 예정이다. 조금 걱정이다. 내가 시를 체계적으로 읽거나 가르쳐본 적이 없으니... 예전 김우창 선생님이 가르치던 대로 따라 하면 어떨까하는데 나는 좋지만 듣는 사람은 조금 다를 수 있다. 9시 수업이라 전날 이 두 수업을 같이 준비하고 강의가 끝나다보면 좀 기가 빠져나간 느낌이다. 뭐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거니까 아무 불만은 없고.
간혹 학교에서 다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부터 보아왔던 교수, 교직원, 동료, 주변 가게 주인들 등등. 기분이 조금 묘하다.
이제 한달을 지나고 나니 조금 적응이 된다.
한길사에서 나온 임석진의 헤겔 <<정신현상학>> 번역본은 좀 신뢰가 안간다. 독일어를 모르니 이런 말 하는게 좀 자신은 없지만, 아무튼, 영어본이랑 대조하는데 엇나가는 부분이 적잖이 눈에 띈다.
월요일은 쉬니 잠시 고향에 다녀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