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거리를 다듬고 밥을 준비하려니할일도 있고귀찮기도 해서 전에 사놓은 꽁치랑 김치를 섞어 찌개를 끓이고오늘 오후에 장 봐서 사놓은김으로 달랑 저녁 식탁을 차린다.간만에 얼큰한 찌개를 먹어서 그런지 간소한 저녁밥상이라도 밥이 맛있다. 찌개를 보자 내 방짝은 전에반쯤 마시고 남은 소주를꺼내놓는다.지난 겨울 방학에 집에 다녀온 내 방짝이 몇 병 가져왔더랬다. 음, 역시 한국사람은 얼큰한 걸 먹어 줘야 돼, 이러면서건배.그동안 짬이 없어서, 한동안 눈요기만 해왔다.한잔 마시니 속이 따뜻해진다. 하하, 조금 기분도 유쾌해지네. 먹고 살자고 이렇게 공부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역시 먹는 일은 사람 일의 근본이다.
갑자기 이야기가 샛길로 나가지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볼 일이 생겨서 옥스포드 영역판으로 조금 읽게 되었다. 레토릭 수업에서 페이퍼 쓸 주제를 찾다가그 유명한<대심문관>(the Grand Inquisitor)편에서 이반이 들려주는빵(곧, 밥)과 자유의지의 관계를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정리하고픈맘이 문득 들어서였다.Communication과('소통과' 이러면 조금 이상한가?) 애들이랑 같이 듣는데,영문과 수업만은 아니어서 굳이 영문학 텍스트를 고르고 싶지 않았고--골랐다면 뭐, 세익스피어의 Julius Caesar 이런 걸로 했을 테지만, 너무 진부하다-- Dr. Aune도자유롭고 포용적인 선생님인지라 내용과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으려 한다.
만약 빵(밥)의 문제를 해결하면 인류는 행복해지는가? 이반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그 전전 장인 <The Brothers Get to Know>에서 이어지는 맥락으로 보아 수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그 방법을 어떤 제도적(세속적)인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생각은 당시 러시아에 큰 영향을 끼치던 사회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를휴머니즘으로 부른다면 굳이 딴지를 걸진 않겠다.그러나 그의 윤리적 상상력은 약간 억지스럽다. 선악의 대비를 극적으로 그려낼 때 그 그려내는 형식과 수사학이 조금 극단적이어서 그렇다.즉, 동생 알료사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 에피소드들의 언급은 현실을 관념으로 버무린 "환상fantasy"처럼 보이지 진실된상상력에서 나온 것으로 들려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관념적인 동정심에 가깝단 얘기다.이반 자신도 그걸 알까? 가령 이 문장을 참조할 것. "One can love one's neighbor in the abstract and sometimes even at a distance, but close up almost never."
이반의 생각을 그러나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타매하기보단그의 전도된 휴머니즘을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세빌리야에 잠시 나타난예수를 심문하는 추기경은 현재 교회가당신의 사명을 대신하는 터에 왜 나타나서훼방하는가는 질문을 던진다.그리고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으면서 빵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는 대신 자유의지로 믿음을 가지게 한 처사를 따진다. 추기경, 곧 이반의 생각으로 인간은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투쟁적이다.그러므로 인간은 이 지상의 풍요와 자유의지를 함께 나누고 가질 수 없다는생각이 가장 큰 전제인데(317), 나는 여기서더 생각해보려한다. 난 아직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인간 삶에 빵 이외의 것이 있음을 심문관이모르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이점에서 옳았다. 왜냐면 인간 존재의 비밀은 살아가는 것만이 아닌,왜 사는 것인지를 아는 것에도 있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비록 빵에 둘러쌓여있다 할지라도 그는 더 살고 싶지 않을 것이고 자신 스스로를 파멸할 것이다." "당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종하는 대신에 도리어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더 강하게 하였고더 큰 짐이 되도록 하였다. 당신은 인간이 당신에게 매혹되어 당신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도록사랑 안에서 선택의 자유를 갖게 되길원했다."
사실 자유의지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밀튼의 [실락원]에서 보는 것처럼, 처음부터 아담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담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돌로 빵(밥)을 만들 찬스를 예수는 무산시켰다. 그 기적은 빵을 통한 천국의 실현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자유의지와 배치된다. 기적이 없어도 믿는 것이 자유의지에 의한 신앙이므로.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기적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잘못된 기적을 쫓아다니면서교회가 어느새 예수의 권위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세상의 권력과 결탁하고제국이 되어 이세상의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지상낙원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 이것을 추기경 자신이(그리고 이반 자신도) 너무나 분명하게 의식적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예수는 말이 없이 바라보다그 아흔 먹은 추기경에게 입맞춤을 하고 잠시 후 추기경은 그에게 다신 나타나지 말라며 그를 풀어준다.
심문관은 진실로 신을 믿는 사람인가? 알료샤는 아니라고 한다. 나도 아니라고 본다.
이제 이 세상에 기적은 더 이상 사라졌는가? 그렇다면 과거의 기적을 믿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빵이 아니더라도 예수의 다른 기적은 그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물론 복음서에서 기적을 보려는 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는 예수의 모습을 반드시염두해둬야 한다.[팡세]에서 "기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말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참신한 표현, 이반이 믿으려는 유클리드적 세계에서의 신과, 비유클리드적 세계에서의 신.
밥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네. 간식 먹고 페이퍼나 써야겠다.어휴, 다시 배고파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