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06.04.21 음악회에 다녀와서 2
  2. 2006.03.31 향수
  3. 2006.03.29 from the 'Cantos'
  4. 2006.02.23 원장면들--이성복

음악회에 다녀와서

지금이 내게 얼마 남지 않은여유로운 때임을 짐작한다.

그 여유가길지 않은 건 정말 유감이다.

나도 그걸 의식하나다른 사람도 그걸 의식한다.

이런 기분은 별로 달갑지 않다.

성남 시향의 연주로,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실황으로 처음 들었다.

그에 앞서 11년 만에 다시 예술의 전당에 찾아오게 되어 감개 무량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잡념과 회상이 교차했다.

당시 칸딘스키 전시회를 보러 친구랑 같이 왔었다. 참 먼 곳에 있다고 느껴졌는데, 지금도 그렇더라.

그의 피아노 협주곡 외에 잘 아는 게 없지만,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교향곡이나 협주곡이나 얼마간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무척 서정적이고, 귀에 감기는 멜로디가있다. 특히 제 3악장,주제음이 크레센도로 올라갈 때 심장이 울컹거렸다.근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옆에 있는 사람도 가슴을 쓸어내리더군. 끝나고서 기립박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냥 의자에 앉아 열심히 박수만 쳐댔다.왼편에서 얼라들이휘파람을 불어대며 제법 흥을 내긴 하더라만.앵콜 곡으로귀에 익은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왈츠, 이 역시 실황으로 처음 들었고, 음, 역시 좋았다. 음반이 이런 현장감을당해낼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그리고 동행한 이랑 간단히 커피한잔.

기대했던 하루를 잘 마무리 했지만좀 허전하다. 이 느낌이 고독인지는 잘 모르겠다.

충족과 아쉬움이 교차한 하루,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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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미련을 갖지 말아야 겠다던, 다신 생각하지 말자던몇 가지 과거의 일들이 다시 떠오른다. 길게는 십년 전의 일까지.

집에 내려와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차분해지고 싶었다. 이유, 글쎄, 잘 모르겠다.그 전에, 가만히 앉아 뭔가를 들여다 볼 기분이 아니었으니.

참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어디까지가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무디지 못한 내 신경과 날을 숨긴 내 말은 남의 맘에 내가 짐작치 못할 어떤 기스를 냈을 것이고, 그 댓가로 나 역시 그 사람들이 짐작치 못할 어떤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가.

막둥이를 보면서 녀석이 많이 컸음을 깨달았다. 모처럼 잠자리에 같이 눕는데, 내가 누구와 함께 이불을 덥는다는 사실이, 뭐랄까, 간만이라, 특히 가족이라서, 아릿했다.먼저 잠든 고녀석의 뒷모습, 뒤통수가 갑자기 측은해보인다.

바람이나 쐬며 기분전환이나 하려 했건만, 또 이런 글이나끼적거리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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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Cantos'

What thou lovest well remains,

the rest isdross

What thou lov'st well shall not be reft from thee

What thou lov'st well is thytrue heritage

Whose world, ormine or theirs

or is it of none?

First came the seen, then thus the palpable

Elysium, thou it were in the halls of hell,

What thou lovest well is thy true heritage

WHat thou lov'st well shall not be reft from thee

-Ezra Pound

에즈라 파운드가피사에서 구금 생활을 하던 당시에 썼던 싯귀...칸토스의 많은 구절 중에서 선생님은 이 글귀를 읽으셨더랬지.

어감이나, 의미로나 멋진 이름을 가진 시인이다. << >>

나도 저 구절이좋은데,내가 그만큼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면서, 어쩌면 이런 말에 내 삶의 빈곤함을 기대려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문득 이 글이 생각날 때가 있다.나 자신에게 무슨 선서를 하는 기분이 든다.

미성숙한 모습을 보면 이제 슬슬 꼴보기가 싫어진다. 젊은 후배들이 어제 보인 모습에 심기가 불편했다.

학자에 대한 예의가그리 없다니...

토마스 만이 '철저한 게 아니면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는데, 나도 동감한다.

김기덕 말대로 대충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사는 것도대충 살 수밖에 없다.

천재와 장인을존중해야 한다.

허접 쓰레기는 가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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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면들--이성복

어느 날 당신은 벌겋게 익은 수박 속을 숟가락으로 파먹다가 갑자기 그 수박을 길러낸 식물(그걸 수박풀이라 해야 되나, 수박나무라 해야되나), 그저 잔가시가 촘촘히 붙은 뻣센 넝쿨과 호박잎을 닮은 잎새 몇 장으로 땅바닥을 기는 그 식물이 불쌍하게 생각된 적은 없는지. 여름날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땅속 깊이 주둥이를 박고 벌컥벌컥 물을 길어올려 벌건 과즙으로 됫박만한 수박통을 가득 채운 끈기와 정성은 대체 어디서 전수받았으며,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단지 쥐똥만한 제 씨알들을 멀리 날라줄지도 모를 낯선 것들에 대한 대접으로는 도에 지나친, 그 멍청한 희생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

어느 날 당신은 고속도로에서 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흰 눈송이 같은 것이 차 유리창을 스치고 헤드라이트 불빛에 떠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밤꽃 향기 진동하는 오월의 따스한 밤, 그 많은 눈송이들이 앞서가는 닭장차에 날려오는 하얀 닭털이었음을 알았을 때의 경이를 아직도 기억하는가. 십 층도 넘는 철망 아파트 칸칸이 분양받은 수백 마리 하얀 닭들이 쇠기둥 사이로 모가지를 빼내 물고 파들파들 떨면서 날려 보내던 흰 날개 깃털들, 애초에 겨울에 오는 흰 눈도 그렇게 해서 빠진 가엾은 깃털이었던가. 어쩌면 그 흰 터럭지는 입관 직전 알코올에 적신 거즈로 마구 문질러 시멘트 바닥에 흩어지던 사랑하는 어머니의 머리칼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해거름 당신은 늘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시내 진입로를 통과하면서 부잣집 마나님마냥 토실토실 살진 돼지들이 허연 돼지털 코트를 걸쳐입고 도축장으로 실려가는 것을 본 적 있는가( 그 돼지들, 언젠가 뇌물받은 장관 부인들과 함께 사회복지시설 방문하러 간 적도 있었던가). 나들이 꿈에 부푼 그 돼지들, 입도 코도 발도 항문도 음부도 너무너무 아름다운 분홍빛이었고, 저희들끼리도 너무너무 아름다운 분홍빛인 줄 알았던지, 흥분한 한 녀석 다른 녀석 음부를 냄새맡다가 쪽쪽 핥아보다가 은근슬쩍 기어올라타다가 야단맞던 모습 보면서, 그때 당신은 당신의 성이 들켜버린 낭패감을 어떻게 감추었던가. 그때 노을이 붉었던가. 그냥 돼지 음부의 분홍빛이었던가.

어느 날 당신은 교회신자들 야유회 같은 데서 보신탕 파티에 끼어본 적 있는가. 다리 아래 솥 걸어놓고 진국이 펄펄 끓는 동안 가정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 끝나 저마다 뜨거운 국물을 나눌 때, 평소 사람 좋은 신도회장이 무슨 꼬랑지 같고 막대기 같기도 한 작은 것을 잡아 흔들며 "에, 이 만년필로 말할 것 같으면...." 하고 걸쭉한 농을 할 때, 온몸 다 바쳐도 끝나지 않던 죽은 짐승의 치욕을 오래 생각한 적은 없는지. 뜨거운 국물에 졸아들 대로 졸아든 그것이 전생의 당신 몸의 일부가 아니었다면, 혹시 내생의 것은 아닐는지.

유치한 당신, 당신은 잊지 못할 것이다. 눈에 흙 들어갈 때까지, 눈에 흙 들어간 뒤에도 잊지 못할 것이다.

이성복, <<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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